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43969.html#ace04ou
러다이트 운동, 그땐 틀렸고 지금은 맞다 [세상읽기]
최필수 |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교수 “성인 수준의 지능을 갖춘 인공지능을 만들기는 쉽지만, 유아 수준의 감각과 운동능력을 지닌 로봇을 만들기는 어렵다.” 컴퓨터 공학자 한스 모라베크가 1
www.hani.co.kr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여...
친노동을 강조하던 정권의 대통령마저 러다이트 운동을 말하며, 현대차 노조의 저항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다보니 노조도 '우린 로봇 도입 그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며 물러난 자세. 그게 물러난 게 맞는가 싶긴 해도 아무튼.
나는 기술자고 고로 기술의 편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눈으로 봐도 로봇이 가져올 미래는 솔직히 걱정이 잎선다. 그런 변화가 가져오는 새로운 정글은 나에게 그닥 친절하지 않다. 앞으론 정글이다. 수렵의 시대다.
내가 대학 나올 때 이런 미래가 있을거라고 이미 많은 선구자들이 예견했다. 회사에서 월급 따박따박 받는 시대가 아니라, 뭐든 돈 될 걸 찾아나서야 할 시대가 올 거라고. 그 당시에도 당연히 사오정 오륙도 이야기가 나오던 시대라 필연이었다. 나도 지금 몇 년이나 회사를 더 다닐지 모르고 언제든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 와중에 개발자 시장은 더욱 겨울이다. 연구라고? 그런 사치스런 소리 하지 말라고 한다.
대통령도 말한다. 사업을 하라고. 그게 되는 사람에게는 기회일수도 있다. 하지만 나처럼, 머리도 빠르지 못하고 사람 만나는게 버거운 사람에게는 헬게이트다. 그리고 AI와 로봇은 그런 흐름을 가속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난 월급 받아먹으려면 그걸 해야한다. ㅅㅂ 내 포지션이 그거니까.
근데, 그래서, 그거 안 할 수 있냐고, ㅅㅂ.
오히려 더 걱정인건, 그 변화에서 우리나라가 뒤쳐지는 것이다. 로봇이 도입 안 되면 일자리가 살아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로봇을 할 거고, 그럼 그 쪽으로 모든 제조업 주도권이 다 넘어갈거다. 우린 죽어라 생산해도 팔아먹을 수도 없다.
안 그래도 노동 생산력이 떨어지는 나라다. 나는 그 이유가 노동자가 무능해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동자가 노력해봐야 시간 더 들이는 수밖에 없는데 그럼 시간당 생산력은 똑같다고! 자원도 없고, 기술만으로 승부해야 하는데, 미국의 첨단기술과 중국의 생산력 사이에 끼인 구조적 문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가 힘드니까 로봇 도입하지 말자는 성립을 안 한다.
우린 어떻게든 노동력 대비 생산성을 끌어올려야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한 전략은 뭔 짓을 하든 기술밖에 없다. 아니면 아직도 우리나라가 글로벌 금융허브가 될 수 있다는 허황된 꿈을 꾸는가? 그게 되면 노동자가 행복할 거 같아?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살지, 같은 말이 아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의 노동자들 자체가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그 단가를 받을 만한 조건이 만들어져야한다. 그럼 자연히 임금도 노동조건도 오른다. 성장을 위한 분배의 희생도 개소리지만, 기업과 노동자의 제로섬 게임도 망하는 길이다.
문제는 여기에 어떤 학자들도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밖에서 더 쟁취할 자신이 없는 이들에게 제로섬 게임은 매우 강력한 유혹이다. 상대를 악마화하면 그만이고, 잘못되어도 탓할 상대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방식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내 다른 글들을 보면 알겠지만 난 우리나라의 대기업들, 경영자들을 까는 편이다. 하지만 그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그들만 깨부수면 유토피아가 벌어지진 않는다.
우린 당장 보고있지 않나. 쿠팡을 보면 알 수 있다. 무능한 한국 기업이 사라지고 미국 기업이 들어오면, 미국 기업은 외교적 압력까지 행사하며 우리나라의 노동자와 소비자의 권리를 깔아뭉갤 수 있다.
19세기의 러다이트 운동은 틀렸지만 21세기는 옳다? 지금의 정보혁명, AI 혁명으로 일자리가 줄고 있으니까? 개소리다. 러다이트 운동이 틀렸던 건 산업혁명이 일자리를 늘려서가 아니다. 그건 거부할 수 없는 변화였기 때문이다. 내가 안 해도 누군가는 하고, 여기선 안 해도 다른 어디선가는 일어나는 변화를 막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변화속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이 대동단결해서 저항한 것이 공산주의 혁명이다. 그리고 공산권 국가들도 나서서 산업화를 했고, 그 소득을 당이 독식했으며, 결국 몰락했다. 물론 당시에 폭주하던 자본주의도 모두 망했다. 단지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적 토대를 통해 스스로 규제하고 변화할 여력은 있었기에 지금까지 온 것이다.
그러니까 러다이트 운동이 지금은 옳다는 헛소리를 할 시간이 있다면, 이미 한계에 이른 현재의 경제 시스템에 올바른 대안을 찾기를 바란다. 그건 공학이 할 수 없는, 인문학의 역할이니까.
우리가 고민해야 할 포인트는 그거다. 어차피 변화는 오고 막을 수는 없다. 그럼 거기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고민해야한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서 소외되는 인권문제에 대해 인문학은 나름의 답을 제시했다. 그건 급속도로 발전란 인류의 생산력을 2번의 세계대전에 쏟아부어, 현세에 지옥을 가져온 그 변화의 방향을 돌린 쾌거였다. 민주주의의 이데올로기와 세계화를 통한 무역시대는 분명 속칭 제 3세계로 불리는 이들에게는 그다지 좋기만 하진 않은 결과를 가져왔지만, 어쨌건 세계대전보다는 나은 세상을 가져왔고, 세상의 많은 영역에는 풍요를 가져왔으며, 그 증거로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구성장을 불러왔고, 많은 지역에서 전쟁의 규모와 여파는 줄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체제는 한계에 이르렀고 지금 나오는 새로운 변화는 또다른 해법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세상이 변했는데 복고주의로 퉁칠 수는 없는 거다.
현대차가 로봇을 도입하지 않는다면 뭐가 달라질까? 테슬라든 다른 누구든, 일단 수많은 중국 업체들은 로봇화에 앞장서고 있다. 그들과 경쟁이 가능할까? 이미 로봇 이전에 인력끼리의 싸움도 지고 있는데? 심지어 이미 기술력도 중국이 우리를 뛰어넘었는데?
억지부린다고 피해지는 게 아니다.
나는 공학자고, 기술의 변화에 맞는 새로운 사회체제따윈 제시할 능력이 안 된다. 내가 제시할 수 있는 건 기술개발의 방향성, 지향점을 바꾸는 것 뿐이다. 예를들면, 인류는 핵분열이란 현상을 바탕으로 원자폭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력에 충격을 받은 많은 과학자들은 그 방향을 인류의 공멸을 위한 폭탄보다는 인류의 발전을 위한 원자력 발전소로 바꿔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스스로를 몇 번을 멸망시킬 수 있는 규모의 핵폭탄을 쌓아놓고 있다.
로봇도 마찬가지다. 안으로는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밖으로는 전쟁에 투입되는 살인로봇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무리 막으려 해도 그 또한 핵폭탄만큼이나 쌓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방향도 있다.
그건 인간 증강이다. 난 이걸 누누히 말했다.
최근 수십 년은 전문가의 시대였다. 소위 사짜 직업들의 전성시대였다. 그리고 그게 몇 년 사이 무너저내리고 있다. 특히 회계사들의 일자리가 급격히 줄고 있다고 한다. 나도 나름 AI전문가라고 하는 입장이라 위협받는 쪽이다. 하지만 이건 또 한편으론 기회이기도 하다. 지식을 쌓아두면 인정적으로 먹고 사는 게 아니라, 누구라도 무언가를 할 의지가 있다면 지식은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에이전트 기술도 마찬가지다. 그게 사람을 대체할 거라고? 그거 개소리라고 누누히 말했다. 모든 기술의 목적은 사람이다. AI가, 로봇이 일하는 목적 또한 사람이다. 고로 그들에게 지시를 할 수 있는 건 사람 뿐이다. 일자리가 로봇으로 대체되기만 하는 게 아니다. 한 사람이 로봇을 동원해 할 수 있는 가치의 크기도 대폭 늘어나는 거고, 따라서 한 사람의 가치 또한 커지는 것이다.
물론 그 혜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는 않는다. 새로운 세계에 적합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닌 사람도 많을 것이다. 후자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까진 나도 답을 못 찾겠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서툰 사람이라도 좀 더 쉽고 빠르게 활용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개량하는 것 뿐이다.
나머지는 인문학자, 경제학자들이 어떻게든 해 봐라, 좀...
다시 말하지만, 현대가, 우리나라 하나가 어떻게 한다고 지금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 죄수의 딜레마와 같다. 내가 안 해도, 남은 할 거다. 거기에 대해 답을 제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집착할 일인가? 우리가 지나온 시대라고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문제 투성이에 지속 가능하지도 않았다. 이미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세계의 자원을 빠르게 고갈시키고 환경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복고주의를 다 같이 해도 멸망 확정이다.
어차피 새로운 솔루션이 필요한 국면이다. 우리는 돌이 굴러가는 걸 막을 수는 없고, 막더라도 좋을 것도 없었다. 다만, 지금 굴러가는 방향을 조금씩이라도 바꿀 수는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완전한 성공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돌 굴러가던 방향을 바꿔본 경험이 있다.
그걸 할 수 없다면, 어차피 굴러올 돌 앞에서 그걸 피하고 살아남을 길을 찾는 수밖에 없다. 신기술이란 돌이 더 늦게 굴러올 먼 곳을 찾든지, 아니면 먼저 부딪쳐 그 변화를 주도하는 위치가 되는 것 말곤 방법이 없다.
덧붙여, 나에게는 이미 방법이 없다. 전산쟁이들은 진작에 바이브 코딩 끼고 로봇군단의 편에 섰으니까.
'단상 > 기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러다이트 운동의 진정한 의미? (0) | 2026.02.13 |
|---|---|
| 여기까진 안 들어올거야, 전략의 한계 (1) | 2026.02.10 |
| 연구의 방법, Principal 과 철학 (0) | 2026.02.09 |
| 현대차가 실패한 방법, 그리고 우리가 기술 개발을 하는 방법 (2) | 2026.02.08 |
| 우리가 소버린을 해야하는 이유 (1) | 2026.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