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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기술

기술, 외부업체에 맡길게 너넨 졸라 못하잖아, 의 악순환

회사의 협력업체 선정을 위해 미국의 스타트업들에 대해 조사할 일이 있었다. 요즘 Physical AI니 뭐니 말이 많아서 미국에 관련 스타트업들이 졸라게 많다. 그러니 그쪽이랑 협력해서 일을 할 구상을 윗선들에선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졸라게 현타가 왔다.

미국의 스타트업이라고 뭐 어마어마한 신비로운 기술을 가진 건 아니다. 하지만 각자 나름 로보틱스에 대해 어떤 철학이 있고, 그 철학을 바탕으로 모델이나 플랫폼 등을 갖추고 있었다.

플랫폼... 업력이 기껏해야 2-3년이다. 대단한 솔루션을 만들기엔 기술을 통합할 시간도 인력도 부족하다. 그러니 프리젠테이션에 나온 내용이 곧이곧대로 믿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요소 기술들은 나름 갖춰놓는 걸로 보인다. 실제 로봇을 현장에 적용하려면 필요한 요소기술들을 빼곡히 갖춰놓은 업체도 보인다.

RFM의 경우 나름 참신한 아이디어의 업체도 보인다. 하지만 나도 그 정도 아이디어는 있었다. 1년 정도만 지금 팀으로 연구하면 시도는 해 볼 수 있을 거 같고, 2년 정도면 그들처럼 독자적인 모델 하나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운 좋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거 같은 느낌. 아직은 이 바닥, 얕다. 기술 자체가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다.

그런데 그들은 수천 억 투자를 이미 받았고, 수십에서 백 명 이상의 인력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국내에서는 수십 억 투자도 힘들며 내 팀은 나를 포함해도 10명이다. 인건비와 최소한의 로봇 확보면 끝이다. 심지어 로봇은 고장을 대비해 동일 세팅으로 2대 확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들에게 이런 거 해 보지 않겠냐고 하면 그들은 일을 골라서 한다. 하나 하는데도 몇 달 씩 걸린다. 그거 하나 빨리 되는 것보다 원천기술의 확보와 기술을 테스트 해 볼 수 있는 파이프라인의 구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장 고객들 만나서 과제 따야하고 시연 보여줘야하고 홍보영상 만들어야하고 행사 참여해야한다. 일을 골라서? 일을 받는 것 만도 감지덕지 해야한다. 안 될 일도 어떻게든 해내야한다.

그들은 2년 먼저했다. 우리는 따라잡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더 많은 자금과 인력으로 그 격차를 벌릴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신기술이 아니라 구식 기술로 어떻게든 당장 상황을 땜빵해야한다. 심지어 그마저도 갖춰져 있지 않아 제로부터 시작해야한다.

이제 1년 후에 말하겠지. 너네 지난 1년 동안 뭐 했냐고. 그리고 역시 국내에서 연구해봐야 소용없고 해외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1년 후에는 걔들은 더욱 넘사 기술을 갖겠지. 그리고 우리는 비싼 돈 주면서 이거좀 제발 해달라고 구걸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말할 것이다. 그래도 자체 개발보다는 싸잖아? 그 돈이 매번 들 건 생각 안하고 말이다.

우리나라는 원래 자원이 없어 기술력으로 먹고 살았다. 하지만 적어도 AI 시대에는 글쎄. 1년 1년 한 템포씩 시작은 늦어지고 뒤쳐지며 결국 손절치고 외국 꺼 사와 땜빵하는 모습들을 보면 불안하기 짝이없다.

늦어도 따라가려만 한다면 괜찮다. 기술은 상향평준화 될 테고 그 때 독자적인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 팔면 경쟁력이 있으니까다. 하지만 어차피 상향평준화 될 거면 그때를 기다리자? 그딴 건 안 통한다. 갖다 쓰는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지금 포기하면 그때도 몇 년을 맨땅에 헤딩해야 그 시장에 비벼볼 만한 기초가 생긴다.

어차피 쓸 돈이면 지금 투자하면 되잖아. 돈 들여 연구개발 할거면 나중에 가격 올릴 해외업체 데리고 PoC 하기보다 국내 인력들 육성하고 자사 애셋 갖추는 게 났잖아. 해외 업체들 우리 말 지지리도 안 들어주고 어차피 남이 개발한 기술은 통합하는 수고는 따로 든다.

그런데도,

거봐, 쟤들은 잘하는데 너네는 못 하잖아.

그리고 그렇게 우리에게 시간을 주지 않으면 다음에도 못 할 거다.


모든 기술을 갖출 순 없다. 당연히 경우에 따라선 외주를 줘야 한다. 하지만 회사가 그 기술이 자사의 핵심 경쟁력으로 보는 부분이라면 뭔 짓을 해서라도 자체 기술을 갖춰야 하고 그걸 위해 투자해야 한다. 갖췄다고 끝이 아니라 계속 고도화 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닌 거 같다. 분명 그 기업의 차세대 전략의 핵심 부분인데 해외 업체에 투자하거나 인수해서 진행한다. 인수했으면 자사로 내재화 해야 하는데 그러는 걸로 보이지도 않는다.

남의 회사의 내부사정까지 들여다볼 순 없으니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현대차도 별 다를 바 없을 거다. 핵심적인 로봇 기술을 가진 건 보스톤 다이나믹스다. 자국 연구원들이 아닌 것이다.

https://dealsite.co.kr/articles/159504

[로봇특구 만들자] '한국산' 없는 정의선의 아틀라스, 반쪽 밸류체인 우려 - 딜사이트

미국 안보 규제에 가로막힌 제조 주권…핵심 부품 공급망 장악 등 대책 마련 불가피

dealsite.co.kr


뭐가 미국 규제 때문인가. 저런 걸 규제 안 하는 나라가 제정신이 아닌 거지. 저걸 토대로 중복투자라도 국내 로봇 기술을 업그레이드 해야 하는 거다. 하지만 안 하겠지. 회사에는 이득이 안 되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현대차 잘 되는거랑 우리나라 잘 되는건 전혀 상관이 없어진다. 오히려 언젠가 국내 공장도 자동화되면 생산직 일자리마저 사라지겠지.

저것조차 아닌, 핵심 기술을 모조리 외국 협력업체에게 맡긴 회사들은? 국내의 이익을 외국에 모조리 쪽쪽 빨리는 빨대가 될 것이다.

공장에 로봇을 막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자국 기업이 잘나가는 거, 하등 도움 안 된다. 국내에 기술이 쌓여야 자본도 기업도 들어오고 가치를 생산하며 경제를 돌린다. 우린 자원은 없잖아.

근데 국내 기업들부터가 기술적으론 우리나라를 손절치고 있다.

그들은 떠나면 그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다. 그리고 막말로, 우리나라라는 베이스 없이 외국의 첨단 기업들과 싸움이 될 거 같아?


나는 우리나라의 인재들은 세계에서 톱클래스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천재들과 같은 극소수의 특별한 인물들은 많이 안 나와도, 그냥 국내의 괜찮은 대학만 나와도 다른나라에서는 대접받고 모셔갈 수준 된다고 본다. 성실함도 남다르고 열정도 있다. 단지 영어를 못 해 못해 못 나가지...

그런 인재들이 백수가 되어 지천에 굴러다니고 있다.

요즘 창의성 교육이니 뭐니하는 이야기도 많다. 교육과정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인재상을 못 키운다는 비판도 쏟아진다. 개소리다. 왜냐하면,

그래서 기업들은 창의적인 인재들을 창의적인 업무에 쓰냐고. 뭐만 하면 갈굼당하는 게 R&D 인력인데.

우리나라는 기술로 성장한 나라이고, 여전히 많은 분야에서 우월한 기술들을 보유하고 있어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의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기술의 격차를 유지하려면 끝도 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건 외주화따위 안 되는 영역이다.

현재 AI기술에어 미국이 1위, 중국이 2위, 그리고 우리나라가 자랑스런 3위라고 한다. 잘 생각해야 한다. 1위는 승자고 2위는 전략적 포지션이다. 제일 망하기 쉬운 건 전략없는 3위다.

당장 당신도 시장에서 품질좋은 1위 상품, 가성비 좋은 2위 상품 두고 3위 상품 안 사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