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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워라벨이란?

요즘 대세 중 하나가 워라벨이다. 어떤 사람들은 일에는 워라벨이 필요하다며 그것을 무시하는 기업들을 욕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요즘 사람들은 워라벨 타령 하면서 노력도 안 하고 성취도 안 하려고 한다고 비난한다. 이는 또 MZ세대론과 이어진다. 요즘 애들 예전같지 않아, 같은.

 

일단, 개인적으로 MZ 세대 운운하는 거 싫어한다. 왜냐면, 이건 카테고라이즈 하기엔 너무 큰 범주기 때문이다. 이 이면에는 MZ의 윗세대들이 '요즘 애들' 운운하는 논리가 숨어있다. 근데 MZ 세대 하면 81년생 부터 12년생까지다. 이 안에서의 스팩트럼도 엄청나게 크며, 심지어 MZ들도 요즘 세대는 어쩌고 하고 저 꼰대들 어쩌고 한다.

 

아무튼간에.

 

세상은 넓고 뛰어난 사람도 많은가 하면 한심한 사람도 많다. 세대를 막론하고 트롤들은 존재한다. 따라서 담론이란 건 한 그릇에 죄다 믹싱해놓고 정크라고 욕하는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논리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고, 어떤 집단도 그런 기준에서 비난할 게 없을 수 없다. 그런 건 낭비적일 뿐이다.

 

그러니 여기선 뭘 비난하기보다, 진짜로 필요한 것을 논해보자.

 

애초에 워라벨이 뭘까?

 

 

워라벨은 'Work-Life Balance' 를 의미한다. 일과 삶의 밸런스다. 이 말 자체는 당연히 좋은 말이고 타당한 말이다. 일과 삶이 조화를 이루어야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건 당연히 좋지 않다.

 

다만, 애초에 일 없는 삶이란 건 현대 사회의 기술력으론 성립하지 않는다. 수입이 들어오지 않으니... 참고로, 파이어족이 된다 해도 하다못해 주식 관리하는 것도 일은 일이다. 그러니 보통은, 이 말이 나오는 건 일에 빠져 삶에서 중요한 다른 요소들을 포기하거나, 외면하게 되는 것을 반대하는 키워드다.

 

문제는 이 단어를 두고 나타나는 양 극단의 이야기다. 하나는, 당연히 전통적으로 있어온, 기업에서 '워라벨이 무슨 개소리냐, 사람이 일을 해야지'라는 논리로 삶을 짓뭉개는 관점과, 또 하나는, '어차피 기업이 내 삶 챙겨주냐? 내 살길 내가 찾아야지'하는 관점이다. 특히나 요즘 후자의 관점이 많이 나오며 조직에 비협조적이고 일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솔직히 당연한 이야기다. 나만 해도 IMF 시대를 어릴 때 눈으로 보고 자란 세대다. 회사가 어려울 때, 개인의 사정 따윈 쥐꼬리만큼도 신경 안 쓰는 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을 눈으로 보고 자란 세대다. 국민들은 금 모으기 운동을 하며 나라를 위해 헌신했는데 나라는 그 대가로 대체 뭘 했는가. 그 때 이후로 부익부 빈익빈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을 뿐이다. 불황기에는 구조조정을 했고, 호황기에도 기업은 심들다며 고용을 꺼렸다. 지금 고용계수는 개박살난지 오래다.

 

심지어 요즘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는 52시간제로는 안 된다, 60시간제 가자고 하는 이야기다. 언론들도 문제다. 사람들이 대단히 착각하는 거 같은데, 우리나라는 52시간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정규 근로 시간은 주당 40시간이고, 특별히 일이 많을 시기를 대비해 52시간까진 근로를 늘려도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특별히 일이 많을 시기가 있으니까 60시간으로 늘리자는 건 그 말 자체가 넌센스다. 그건 일이 몰리는게 아니라 그냥 사람을 덜 뽑은 거다. 그리고 52시간 일을 해도 잘릴 땐 잘린다. 아니, 나이 들면 연봉은 높은데 말은 안 듣고 새로운 일에 적응 못한다고 더욱 자른다.

 

젊다고 괜찮나? 이런 이야기 나올 때 마다, 어떤 회사가 떠오른다. 뭐 개발한다고 회사 직원들이 이혼했다는 걸 자랑스럽게 말했던 그 회사가...

 

회사는 개인의 삶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지금 나오는, 워라벨에 대한 욕구는 기업들이 이전에 치르지 않았던 비용에 대한 대가이다. 뿐만 아니라, 그 비용은 국가 전체로 전가되며 지금의 출산률과 혼인률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요즘 애들 운운할 자격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반대쪽은 문제가 없을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워라벨을 빌미로 회사 일을 제대로 안하는 사례들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요즘 알바를 고용하는 자영업이든, 고급 인재 구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이든, 진상 직원들에 무수히 피해를 보고 있다. 그 양상은 천차만별이니 굳이 말할 것도 없고, 문제는 그들의 방어 논리에는 워라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워라벨에 대해 적대감을 갖는 이들도 늘어나는 것도 이해가 가긴 한다.

 

하지만.

 

진짜 소수의 악덕기업들이 아니고서야, 당연히 직원의 삶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워라벨은 다시 말하지만 Work-Life Balance다. 거기엔 일을 제외한 삶 만이 있는 게 아니라 '일'도 포함되어 있다. 일도 삶의 일부다. 그리고.

 

지금 일해서 자원을, 즉 '돈'을 축적해 두지 않으면 당연히 삶도 무너진다. 워라벨이란 건 놀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게 아니다. Work-Playing Balance가 아니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건 애초에 '삶'이란 게 뭐인가부터이다.

 

당신에게 있어서 '삶'이란 무엇인가?

 

일단 여기서부터 자칫하면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오해가 하나 있다. 그건 Work는 Life의 반대 개념이 아니란 것이다. 그것이 반대 개념이라면 당신은 정말 끔찍한 삶을 사는 게 된다. 왜냐하면, 당신은 하루 8시간은 '삶'에 반대되는 '죽음'을 겪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인생의 1/3 수준의 코스트가 아니다. 하루에는 24시간 밖에 없고, 수면 시간을 제외하면 16시간 뿐이다. 출퇴근 시간도 업무의 연장으로 본다면 그 중 최소 10시간은 날리게 된다. 일주일로 쳐도 16 * 7 = 112시간 뿐이다. 그 중 주 5일, 50시간을 날리면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인생이 '죽음'과 같이 된다. 야근이 많아 주 52시간을 채우게 된다면 출퇴근까지 62시간, 절반 이상이다.

 

그건 끔찍하기 짝이 없는 삶이다. 당신이 아무리 남은 시간에 해외여행을 가고, 비싼 물건을 쇼핑하고, 고급 차를 타고 드라이빙을 해도 당신의 인생은 절반 이상이 잿빛이고, 반죽음의 인생을 사는 꼴이다. 그 상황에서 당신이 고려해야 할 건 워라벨이 아니다. 죽음으로부터의 탈출이다.

 

그건 어쩔 수 없지 않냐고? 일해서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삶을 살지 않는다. 대단한 재산이 있지 않더라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냥, 일에서 성취를 얻고 성장하면 된다.

 

왜냐하면 명품 물건을 사는 것 만큼이나 스스로의 능력이 향상되거나, 무언가 이룬 것의 쾌감은 크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더 크고 오래가며, 장기적으로 나에게 여유를 만들어준다. 오히려.

 

회사가 나를 책임져주지 않기 때문에, 나는 회사의 일로부터 더 많은 성취와 성장을 달성해야 한다. 그래야 이직을 하든 창업을 하든 할테니까. 회사가 자기를 책임져주지 않는다고 업무 시간에 주식투자를 하거나 딴짓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것도 바보짓이다. 그런 걸 하는 사람 치고 밑천이 제대로 있는 사람 없고, 1~2억 가지고 연 20% 달성해 봐야 2~4천 만원이다. 당연하지만 당신이 연 20% 수익률 달성하는 거보다 그냥 일해서 월급 받는 게 빠르고, 연 20% 달성할 수 인재라면 당연히 당신은 금융사에서 더 큰 연봉 받으며 일할 수 있는 인재인거다. 그런데 그런 데 취직이 안 됬다면 당연히 당신은 연 20%도 달성 못한다. 그리고, 그 정도도 못하는 당신이 직장 업무조차 소화 못한다면, 당신은 지금의 직장도 유지 못할 것이다.

 

그건 회사 운운 하기 전에 자기가 자기 스스로에게 무책임한 것이다.

 

주식투자를 하지 말란 게 아니다. 회사 업무로부터 조금이라도 성취나 성장의 포인트를 찾아내는 데 더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것 못하면 어차피 어떤 일을 하든 끔찍할거고, 회사가 어떤 배려를 해 줘도 하루 10시간은 고정적으로 지옥이 될 것이다. 그런 상태에선 어떤 상황에서도 워라벨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워라벨의 Work가 위와 같다면 Life 역시 마찬가지다. 일단 워라벨을 따지는 것 부터가 회사가 자신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고, 자신의 삶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시간에는?

 

놀아?

 

어림도 없다. 놀 수 있는 건 회사든 다른 누군가가 날 책임져줄 수 있을 때에나 가능하다. 하다못해, 내가 나 자신을 책임지고 앞으로 삶을 살아갈 계획이라도 있어야 내가 놀 수 있다. 그런 게 없는 상태에서는 놀아도 노는 게 아니라 그저 현실도피일 뿐이고, 아마 실제로 많이 겪을 것이다. 걱정거리는 산더미고 미래도 그려지지 않으며 내일이 기대되는 게 아니라 두려울 뿐인데 오늘 논다면? 그것도 지옥이다.

 

일하지 않는 시간도 마냥 놀 수 없다. 그 또한 자신의 성취와 성장에 투자해야 한다. 회사에서는 회사의 일을 바탕으로 내 성장을 도모한다면 당연히 회사 밖에선 회사 일 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경험치와 스킬들을 채워야 한다. 그렇게 해서 스스로를 완성된 인간으로 만들어내고, 독립적인 개체로서의 스스로를 확보해야 한다.

 

운동도 좋다. 내가 하는 것 같은 블로깅도 괜찮다. 수익이 되는 부업도 나의 독립성을 갖춰주는 좋은 소재지만 수익이 되지 않는 것도 나를 채워줄 수 있다. 취미라도 괜찮다. 별 생산성 없는 취미가 새로운 생산성이 되어줄 때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나만의 세계를 갖추고 완성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능력이 올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육아? 당연히 중요하다. 그 또한 인생의 역작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니까. 아이가 없다면 부부관계를 개선하는 것도 좋고, 펫을 키운다면 펫을 돌보는 것도 가치가 있는 성취가 될 수 있다.

 

그 모든게 삶에 필요한 요소들이고 삶 그 자체다.

 

워라벨이란 건 그런 것이다. 일과 관련된 나의 삶과, 일과 무관한 나의 삶 모두를 밸런스 있게 챙기는 것이다. 그건 순간의 쾌락을 위해 낭비할 시간을 확보하는 게 아니다. 장기간의 나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닦고, 장기간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을 갖춰, 좀 더 즐겁게 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려면 투자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가치있는 시간을.

 

때때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워라벨 따지는 건 배부른 소리라고. 하루 24시간을 모조리 생존을 위해 써도 모자라다고. 특히 자영업을 하면 휴식 시간을 따로 갖기 힘들다. 휴가도 내기 힘든 일이 비일비재하다. 주말도 못 쉬는 사람 천지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워라벨은 필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워라벨은 노는 시간을 확보하는 개념이 아니다. 밸런스의 개념이다.

 

여유시간을 따로 갖진 못해도 일에서 충분히 성장과 성취를 누리며 삶을 지속해 나갈 수 있다면 그건 워라벨이 맞는 삶인 것이다. 물론, 일에 빠져 과로로 건강을 잃어버리는 건 당연히 밸런스가 깨진 거지만.

 

52시간도 과로로 위험하다고 하지만, 그 이상의 일을 해도 건강하게 잘 살아가는 사람들 충분히 많고 있을 법 하다. 특히나 그렇게 일하고 성공한 사람들이 저런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이미 그 일에서 성취감과 즐거움을 느끼던 사람들이다. 본인들은 힘들고 괴롭다고 말해도, 그런 즐거움이 전혀 없었다면 애초에 그렇게 일을 하지도 못한다.

 

일론 머스크가 주 120시간 일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우리나라에도 주 120시간 일할 수 있는 사람들 많다. 저기 PC방에. 그 사람들은 진짜 쉬지도 않고 하루 죈종일 미친듯이 사냥만 한다. 단지 그 업무의 결과로 주어지는 금전이 일론 머스크만큼 안 될 뿐이다. 반대로, 일론 머스크도 아마 게임 내에서 그렇게 사냥하라고 하면, 때려칠걸? 실제로 대리게임도 했고.

 

당연히 모든 사람이 돈이 되는 일에 120시간씩 녹여도 버틸 수 있지 않고, 모두가 그런 삶을 살면 인류는 멸종하는 게 당연하다. 애는 누가 키우는데. 하루 8시간 자면 일주일에 112시간밖에 없는데. 그런 워커홀릭을 당연한것처럼 말하는 인간은 자신이 일에 집중하는 만큼 많은 부분을 남들이 커버해주고 있다는 걸 보지 못하는 장님들일 뿐이다.

 

 

결론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쳐서는 안 된다. 일에만 빠져도 안 되고, 일을 혐오해도 안 된다.

 

워라벨은 업무시간이 몇 시간이가 휴식 시간이 몇 시간이어야 한다는 개념이 아니다. 내가 삶을 지속할 수 있는가의 개념이다. 그런 만큼, 남을 탓하기 이전에 주어진 것을 바탕으로 내 삶 부터 설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더 많은 게 주어져봐야 밑빠진 독에 물 붇기가 될 테니까.